월요 독서 모임에서 즐거운 아침 독서를 즐기고 있던 나.
갑자기 친구 뇸뇸이에게 카톡이 왔다. 공연을 예매했는데, 몸이 별로 안 좋아서 양도하고 싶다는 얘기였다.
가여운 뇸뇸이. 기대했던 공연인데 가지 못한다고 하여 불쌍하였다....

그날 나는 오전 8시 반 서촌 독서 모임, 그리고 오후 7시 안국 독서 모임이라는, 독서모임 광공 같은 기괴한 스케줄이 있었다.
중간에 어딘가 가서 작업이나 해야 하려나 생각하던 차에 서촌에서 4시 공연이라니!
붕 뜨는 시간을 보내기에 딱이었다! (뇸뇸이에겐 안 됐지만...)

공연의 제목은 <우리는 들키면 안돼>. '프로젝트 온사이트'라는 팀에서 하는 신작이라고 했다.
뇸뇸이가 보내준 공연 정보를 보니, 어딘가 특이하게 느껴졌다. 서촌 일대를 돌아다니는 공연이고, 관객마다 집합 장소가 다르고... 차도 한 잔 주는 공연... 공연...? 삐리뽕...? 삐리뽕은 뭐지...? 아동극인가? 하는 생각을 하고는 곧 잊어버렸다. 새로운 카페도 가보고 헌법재판소 도서관도 가보고 단풍 구경도 하고 여기저기 왔다 갔다 하느라 바빴기 때문이다.

참고로 헌법재판소 도서관이 참 좋았다. 신분증만 맡기면 누구든 갈 수 있다. 책이 아주 많지는 않지만 좋은 책들이 꽤 있고, 독서대가 있어서 좋았다. 보안 상의 이유로 와이파이는 제공되지 않는다.
내가 <우리는 들키면 안돼> 팀에게 전달받은 집합장소는 통의동 마을마당.
오며 가며 봤겠지만 눈여겨본 적은 없는 곳이었다.
이 건너편에 경복궁 돌담이 있는데, 은행나무 단풍이 절경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나는 구독 중인 모 유튜버 때문에 최근 베토벤 음악에 꽂혀 있는데, 베토벤 소나타를 들으며 사람들 사이를 걸으니 기분이 좋았다.

기다리다 보니 고양이가 그려진 가방을 멘 공연자가 내게 다가왔다.
관객은 세 명. 통솔자이자 공연자가 한 명.
공연자는 자신의 별명을 '솔잎'이라고 했다. 늘 변함없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멋진 별명이다.
우리도 별명을 지었다. 나는 옆에서 새소리가 들리기에 짹짹이라고 불러달라고 했고, 다른 두 분도 각각 원하는 별명을 붙였다.
솔잎은 우리에게 삐리뽕에 대해 설명했다.
너무 자세히 쓰면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간단히만 설명하자면 - 이 세상에는 사람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언제나 존재하지만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사소한 것들이 있는데 이것을 삐리뽕이라 명명한 것이다. 우리는 모두 함께 이 사소한 아름다움을 찾아 나서는 탐험대였다.
우리 네 명으로 구성된 탐험대는 서촌 일대로 모험을 떠났다.


휴대폰을 집어넣고 천천히 걸으며, 사소한 것들을 발견하기 위해 노력하고 또 발견한 것들에 저마다의 이야기를 덧붙이는 이 작업은 너무 멋진 경험이었다. 한걸음, 한걸음 걸을 때마다 세상이 조금씩 다르게 보이는 것이 느껴졌다.


전체 테마를 고양이로 잡은 것도 귀여웠다. 탐험을 하던 도중, 다른 집결지에서 출발한 다른 팀들을 마주치면 고양이 꼬리처럼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단순하고 사소하지만, 한순간에 서로에게 유대감을 느끼게 하는 좋은 장치였다.
솔잎은 때로 '탐험대를 방해하는 이들'을 피하기 위해 조용히 지나가야 한다고 요청했다. 실제 그곳에 거주하고 있는 서촌 주민들을 배려함과 동시에 몰입감을 높여주는 좋은 요소였다.


갈수록 자주 다른 탐험대를 마주치더니, 결국 <우리는 들키면 안돼>의 모든 탐험대는 한 비밀스러운 장소에 도착했다. 여기서부터 2부라고 할 수 있는 새로운 국면이 펼쳐졌다.
은신처에서 각자 탐험 장비를 지급받은 우리는, 이제 팀이 아닌 개인으로 움직이게 되었다. 그렇다고 완전히 개인 활동은 아니었고, 무전기를 통해 서로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 무전기를 쓸 때에는 몇 가지 규칙이 있었는데, 처음에는 민망해서 잘하지 못하던 사람들도 갈수록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무전기로 들리는 다양한 목소리는, 한순간 나를 진짜 탐험대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했다. 각각의 목소리는 어조도, 성격도, 발견한 삐리뽕도 모두 달랐다. 짧게 발견한 것만 보고하는 사람도 있고, 길게 자신의 소감을 공유하는 사람도 있었다. 영화를 보면 무전기 사용 마지막에 "...오바." 하는 것처럼 "...다. 삐리뽕!"이라고 붙이는 말도, 어떤 사람은 자신 있게 "삐리뽕!"이라고 외쳤지만 다른 사람은 "삐.. 삐리뽕..."이라고 창피해하는 것이 느껴져서 재밌었다. 누군가가 황당한 삐리뽕을 발견했다고 보고하면 다른 누군가가 킥킥 웃기도 했는데, 그런 순간들이 너무 따뜻했다.
나는 프리랜서로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지만, 어딘가에 소속감을 갖게 되는 일은 갈수록 줄어드는 것 같다고 느낄 때가 많았다. 일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면서도 외롭다고 느낀 순간도 많았다. 이 무전기를 통해 서로 연결되는 삐리뽕 탐험대는 내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다행히) 우리의 학교 성적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던 부모님은 나와 내 동생들을 알아서 놀게 내버려 두었는데, 우리는 언제나 나뭇가지를 하나 들고 동네 공원의 언덕을 오르락내리락하거나 골목들을 탐사하곤 했다. 놀러 나온 다른 집 아이들이 우리의 모험에 합류하는 경우도 많았다.
무전기에서 흘러나오는 "... 를 발견했다. 삐리뽕...!" 하는 목소리를 들으며, 문득 그 순간들을 너무 오래 잊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때는 시간 내에 이것저것 발견하는 데에 급급해서 정작 내 휴대폰으로는 사진을 거의 찍지 않았다.
몇 가지 기억나는 재미있었던 일을 얘기해 보자면 -
누군가 갑자기 "어어...? 거북이..? 거북이가 있다. 삐리뽕"이라고 해서 대체 뭔 소리인가 싶었는데, 조금 더 걸어가니 진짜 거북이가 있었다!

뭐지 이건.
요즘 이 동네 많이 돌아다니는데도 이런 건 정말 처음 봤다.
이 외에도, 엄청 큰 천이 철조망에 걸려 찢어져있길래 "거인의 찢어진 옷자락을 발견했다...!"라고 보고하니 다른 참여자가 "여기는... 거인의 어금니가 있다!"라고 해서 그게 뭔지 엄청나게 궁금했던 것이 기억이 난다.
마지막 집합지에서 우리는 서로가 찍어온 삐리뽕을 모았다.

그 순간 나는 우리 탐험대원을 모두 사랑하게 되었다...
너무나 따숩고 귀여운 사람들. 몽글몽글한 동화 속에 들어온 것 같았다.
친구의 양도로 인해 갑자기 별 기대 없이 관람하게 된 작품이었지만,
기대 없이 갔던 것이 미안할 정도로 아름답고 따뜻한 경험을 했다.
탐험대가 해산되고, 저녁에 있던 책 모임이 끝나고 집에 가면서도 나는 혼자 삐리뽕을 찾아보았다.

무전기로 들리던 사람들의 "삐리뽕!"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렇게 아침부터 강행군인 일정을 소화한 나는...

하루 3만보를 달성한 후 이틀간 앓아누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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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들키면 안돼> - 프로젝트 온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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