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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있는 것들/뱅이 본 영화

다큐멘터리 <올파의 딸들>를 본 후.

by 읽는뱅 2026. 3. 7.

올다큐 모임을 위해 급하게 벼락치기로 다큐멘터리를 봤다....

 

너무나 좋았따....

튀니지에서 네 딸을 키우며 살아가는 올파. 그의 두 딸은 점차 급진화되어 IS에 가담하게 되는데...

 

가족, 성, 폭력, 전승, 사랑, 여성과 자매애가 뒤섞인 정말 아름다운 다큐멘터리. 

감독은 가족을 떠난 두 딸을 대신할 두 배우와,

올파가 감정적으로 너무 힘든 장면을 대신할 올파 역의 배우를 섭외하여

올파와 남겨진 딸들, 배우들이 함께 영화를 만들어나간다.

 

 


 

우리 엄마는 딸 여럿을 혼자 키웠어요. 무자비한 세상에서 우린 만만한 먹잇감이었죠. 
엄마는 딸만 낳았고 아빠는 떠났어요. 종종 남자들이 집에 쳐들어오려고 했어요. 문을 부수고 들어오려 했죠. 
우릴 지킬 사람은 나밖에 없었어요. 그때 난 어렸어요. 
겨우 열서너 살이었지만 난 용감했어요. 스스로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아시겠죠? 
난 웨이트 트레이닝을 시작했고 머리를 자르고 남자처럼 옷을 입고 엄마를 지키기 위해 남자가 됐어요. 
우릴 괴롭히면 가만 안 뒀어요. 다 두들겨 팼죠. 

 

올파는 당당하고 독립적인 여성이다.

결혼 첫날 신랑은 그와 강제적으로 관계를 가지려 하고, 

심지어 그의 언니조차 '처녀가 아니라서 그러냐'며 이를 부추긴다.

올파는 자신을 쓰러뜨리려는 신랑을 때려눕힌 후 그 피를 옷에 묻혀 결혼식을 위해 모인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그런 사람이다.

 

그는 네 딸을 낳는다.

아빠가 하는 말 들었지? 그 인간은 너희가 창녀가 될 거라고 믿고 있어. 
그 말처럼 되지 마. 너희는 이 올파의 딸이고, 올파의 딸은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고 말해. 

 

올파는 동시에 여성의 몸과 삶을 대상화하는 시선을 그대로 내면화한 존재기도 하다.

그의 복합적이고도 혼란스러운 윤리관과 인생관은

그와 그의 딸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 듯하다.

그러니까 당신에게는 몸은 위험한 거네요
몸은 넘어선 안 되는 선이에요. 한 사람(남편)의 사적 소유물이니까. 
그들은 여성을 통제의 대상으로 봐. 우리 인생을 자기네가 계획하고 틀에 가두려 해. 벗어날 수 없어.

 

딸들이 '엇나갈까봐' 두려웠던 올파는

딸들을 죽일 듯이 때려서라도 단도리하려 하고,

점차 딸들은 보수적인 노선을 택한다.

그러면서 눈을 이렇게 깜빡여. 예쁜 눈을 보여줘.
그러면서 왜 니캅을 써?
왜 쓰냐고? 예뻐보이려고. 그땐 그게 유행이었어. 
지금은 찢어진 청바지지만 그땐 니캅이었어. 
처음엔 애들이 히잡을 쓰는게 좋았어. 

 

그 중 큰 딸과 둘째 딸은 점차 이슬람 원리주의에 심취하더니,

온몸을 가리지 않는 엄마 올파를 비난하기 시작한다.

 

맞아, 내가 조준하는 법을 가르쳤고 애들은 날 쐈어. 
강해지라고 가르쳤더니 나를 굴복시켰고 나를 쥐고 흔들었어. 

 

사랑과 통제, 딸들이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과 자신이 살아온 억압적인 사회는

이 웃음 많은 가족을 일그러뜨리기 시작한다.

처음엔 히잡을 쓰다가, 온몸을 가리는 니캅을 착용하기 시작한 딸들. 

 

난 이 복장이 싫어. 재연을 위해 입었을 뿐이야. 거울도 보기 싫어. 
근데 내 딸이 입으면 자랑스러워. 난 에야가 옷 입는 게 마음에 안들어. 

 

우애가 좋은 자매들은 언제나 함께한다.

그들이 어렸을 때 했던 놀이를 재연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매우 흥미로웠다.

둘째 딸이 만든 이 놀이는, 각자 제비를 뽑아 역할을 지정하고(시체 묻는 사람, 순교자 등)

한 명이 죽으면 이를 묻는 놀이다.

 

불의 드레스를 입혀라, 불의 신발을 신겨라!
신이여 자비를 베푸소서! 인간이 아닌 돌이면 좋았을걸. 
자비를 베푸소서, 심판의 날이 올 줄 몰랐어요. 

 

결국 큰딸은 어느 날 IS로 넘어가고, 

곧 둘째 딸이 뒤따른다.

 

고양이는 새끼를 너무 걱정해서 잡아먹는다던데
나도 똑같아요.

 

딸들이 행복하게 자라기를 바랐던 올파...

하지만 마치 뒤틀린 신탁처럼, 그 마음은 딸들을 극도로 보수적인 급진주의자로 바꿔 놓았다.

두 딸은 IS 폭격 이후 감옥에 수감되어 있다.

올파와 남은 두 딸은 그들을 미워하면서도 그리워하고,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

 

큰딸에겐 IS에서 낳은 딸이 있다. 그 작은 아이는 감옥에서 엄마와 함께 지내고 있다.

그 딸을 지키려는 큰딸의 모습이 어쩐지 올파와 많이 닮아 있었다.

 

- 이 영화를 찍으며 모든 걸 다 얘기했어요. 그 과거가 내 삶과 내 딸들의 삶을 규정했죠.
근데 미래가 더 두려워요. 과거보다 더 무서워요.
우리 엄마가 내게 한 짓을 내가 송두리째 반복했다는 게 무서워요. 거의 똑같이 했어요. 
- 왜 그런 것 같아요?
- 저주죠. 

 

 

이 다큐를 보면서 <백년동안의 고독>이 많이 떠올랐다.

삶은 세대를 넘어 반복된다.

 

다만 마지막에 감독이 말했듯, 

다음 세대는 그 사슬을 깨뜨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비록.... 큰 딸과 둘째 딸은 이에 실패했을지 몰라도.....

 

 

정말 사랑스러운 가족이었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분노를 품고,

때로 내재된 사회적 규범으로 인해 서로를 억압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서로를 여전히 사랑하고 있는 여자들.....

 

허구와 실제가 너무 흥미롭고 아름답게 섞여있다는 점도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