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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있는 것들/뱅이 본 영화

아녜스 바르다의 <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 다큐멘터리

by 읽는뱅 2025. 4. 8.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관 중 하나인 서울아트시네마. 
나 자신이 고갈되었다는 느낌이 들면 이 곳의 상영 시간표를 찾아보곤 한다.
요즘 한동안 손을 놨던 다큐멘터리 작업을 재개하려고 노력 중이라,
다큐멘터리를 한 편 보기로 했다.
 
아녜스 바르다... 세상 모든 것들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 나.... 완전 처음 들어본 사람이다.
하지만 유명한 감독인 것 같았다.

포스터가 너무 못생겼다..

 
내가 보기로 한 작품은 <이삭줍는 사람들과 나>. 
밀레의 <이삭 줍는 사람들> 그림에서 출발하여 줍는 사람들을 쫓아가고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감독이 사전에서 줍는 사람들에 대해 찾아보는 첫 장면이 나왔을 때는 너무 뻔하고 지루할 것 같았지만, 
첫인상과 다르게 감독의 생각을 이리저리 쫓아다니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현대에 쓰레기통에서 음식을 주워 먹는 집시나 부랑자들, 공장식 대량 농사 시스템에서 버려지는 규격 외 수확물(토마토나 감자 같은거)를 줍는 사람들, 멀쩡한 직장이 있지만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항의로 쓰레기를 뒤지는 사람들, 길에 버려진 가전 제품을 취미로 주우러 다니는 사람들, 고물로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 등등. 
여기서 저기로 왔다갔다, 주제도 큰 하나의 줄기가 있을 뿐 이것저것 건드리며 깊게 파고들지 않는다. '이게 그래서 누군데?'라는 생각이 드는 인터뷰이들. 하지만 이 작품이 매력적이었던 이유는, 이 작품을 보는 관객들로서는 그 안에 녹아 있는 감독의 탐구적이고 자유로운 영혼을 사랑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프랑스 법에 명문화되어 있다는 '주울 권리'라는 것이 참 흥미로웠다. 우리는 왜 그런거 없지.
이 작품에 나온 사람들은 정말이지 규격에서 벗어난 삶을 살아간다. 
나 자신도 규격에서 어느정도는 벗어난 삶을 산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그저 우물 안의 개구리였다.
쓰레기통에서 주운 음식으로 식사를 해결한다든지, 석사까지 땄으면서 변변한 일자리도 없이 파장한 곳의 식재료를 주워 먹으며 저녁에 쉼터 봉사활동을 하는 삶....나는 그렇게 살 수 없을 것 같다. 그들은 불안하지도 않은 것일까? 
그 자체가 너무 싫다기보다는, '이렇게 살면 안돼'라는 사회적인 잣대와 그로 인한 죄책감 때문에 그런 방식으로 살기 힘들 것 같았다. 
 


이 다큐를 보고 주울 권리에 대해 조금 더 찾아봤다.
위키피디아의 <Gleaning> 페이지에 따르면, 이러한 관행은 성경에 뿌리를 두고 있는 듯하다.
 
신명기와 레위기에 따르면, 농부들은 밭 가장자리를 수확하지 않은 채로 두어야 했고, 떨어진 것(이삭줍기)을 주워 모아서는 안 되었으며, 밭의 대부분을 수확할 때 잊었던 농산물도 수확해서는 안 되었다고 한다. 또 아래와 같은 내용도 있었다고 한다.
 
- 포도원에서 일부 포도는 수확하지 않은 채로 두어야 한다
- 올리브 나무를 여러 번 두드려서는 안 되며, 한 번 두드리고 남은 것은 그대로 두어야 한다. 이는 가난한 사람과 나그네를 위한 것이다.
+ 또한 룻기에서도 과부 룻이 자신과 시어머니 나오미를 부양하기 위해 이삭을 줍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로 인한 관행은 아직도 유럽 일부 국가에 남아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까치밥 같은 것일까? 사람 간의 따뜻한 마음을 되새겨볼 수 있는 세상의 단면이다.
 


한편, 자본주의 사회는 그 반대의 이야기도 만들어낸다. 
몇 달 전 봤던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지금 구매하세요!>엔 사람들이 주워갈 수 없도록 훼손해서 버리는 물건들에 대한 인터뷰가 있었다.
목욕용품을 파는 브랜드에서 노숙자들이 주워가서 쓰지 못하도록 제품을 쓰레기통에 직접 짜서 버린다든지, 명품을 칼로 찢어서 버리고, 팔다 남은 음식을 섞어서 중량을 잰 후에 버리는 등, 회사들은 자신의 브랜드 이미지를 '가난한 자들'이 훼손시키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써댄다. 

다큐멘터리 <지금 구매하세요!>

 
만드는 사람들, 사는 사람들, 파는 사람들, 버리는 사람들, 줍는 사람들, 주워가지 못하게 막는 사람들. 
쓰레기통은 과잉 생산, 소유, 소비, 자본, 브랜딩 같은 것들이 복잡하게 얽힌 전쟁터이기도 하다.
 
몇 년 전 할머니 집으로 이사오며 내 방을 꾸밀 때, 나는 아파트 쓰레기장에서 꽤나 쓸만한 가구들을 많이 주워왔다. 
원목으로 된 커다란 책장, 전신 거울, 선반으로 쓸 수 있는 나무 블록들.
그것들을 쓰며 나는 이 물건들의 원 주인들은 어떤 사람이었을지를 상상한다. 
주워온 물건의 낙서나 스티커, 얼룩 같은 것들은 보물지도의 표식처럼 나를 그 사람의 인생 속으로 안내한다.
그리고 그 물건을 이어서 쓰고 있는 나도, 어떤 흔적을 남길 것이다.